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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장 "가부장적 문화 학교 곳곳에 만연" (경향신문, 2017.10.12.)

17-10-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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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10-13 09:41 조회3,9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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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를 만든 다양성위원회는 어떤 조직인가요  87783a29078b4085fd188038837b6341_1565144036_2114.jpg

“2015년에 서울대 여교수회가 총장께 학교 구성원 다양화를 관장할 기구가 필요하다고 건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성 평등 이슈가 제일 컸고, 그 외에도 외국인 등 다양한 구성원을 우리 학교가 포용하는 정책을 보여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가 공감을 얻어 지난해 3월 최초의 총장 직속 자문기구로 다양성위원회가 출범했어요. 이번에 내놓은 다양성보고서는 거의 1년간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30여개 기관에 80명 정도 되는 ‘다양성 담당자’들을 두고, 이들을 통해 자료를 수집·가공해 다양성의 관점에서 학교 구성원부터 교육 참여 현황, 제도적 지원 등 다양한 측면을 분석했습니다. 자랑거리가 아닌 부분도 다 드러내는 작업이라 민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재 상황을 바로 보고 발전 방향을 잡자는 의미에서 학교 전 구성원이 노력해 만든 결과물이에요. 학교가 어떤 구성원 집단으로 이뤄졌는지, 다양한 전임교원 임용이 이뤄지고 있는지, 대학의 주요 구성원이면서도 마땅히 받아야 할 주목을 받지 못하는 집단은 누구인지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습니다.”

-다양성 보고서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여학생 숫자에 비해서 또는 비전임 여성 교원숫자에 비해서 전임 여성교원의 비율이 너무 낮다는 것, 그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 제일 큰 강조점입니다. 또 하나는 그동안 통계에 잡히지 않던 대학원 연구생, 교류학생, 비전임 교원(연구교사, 시간강사 등) 등을 전업과 교류(비전업)으로 나눠 분석한 것이에요. 정년이 보장되든 계약직이든 전업으로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그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했더니,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 수가 거의 비슷했습니다. 전업 비전임교원 중 57.6%는 여성이었죠. 이들은 거의 다 박사학위 소지자이니 전임교원 즉 교수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에요. 여성 교수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우리 학교에 굉장히 많다는 것이 통계로 드러난 것이 큰 시사점입니다.” 

-1986년 처음 서울대에 부임하셨을 때 자연과학대에 여성 교수가 3명밖에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수학과, 천문학과 등에 이론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계셨고, 실험을 하는 분야에서는 제가 처음이었죠. 그 때는 여성을 동료로 뽑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색한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잘 챙겨줘야 될 것 같고, 불편하고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죠.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여성 교원 수도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고, 여성을 동료로 보는 것 자체를 어색해하던 초기의 그 분위기가 지금은 많이 완화됐습니다. 30년이나 지났으니까요. 하지만 여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세상이 바뀐 것에 비해 아직 학교가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나라가 되니까 평등에 대한 기대치나 눈높이는 점점 높아지는데, 여전히 과거의 가부장적인 생각을 못 벗어나는 문화가 학교 곳곳에 만연합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바로 이런 부분이 우리 학교 발전을 막고 있다는 점이 보이게 된 것 같아요.”

-보고서를 보면, 자연과학이나 공학 부문은 여전히 여학생 비율이 매우 낮습니다. 다양성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여성의 비율이 낮은 이유가 애초에 여학생이 공학·과학에 관심이 없어서 관련 대학 진학률이 낮고, 그 결과 여교수 지원자 풀도 작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성들은 이런 학문에 맞지 않다는 고정관념이 작용해 전공 선택, 학습, 연구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는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실제로 그런 일이 은연중에 일어 납니다. 여학생들에 대해서는 공부를 끝까지 해서 전문직을 하라는 것을 굳이 힘주어 장려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그 문화는 여전히 남아있는 게 사실입니다. 여학생을 제자로 받아들여 끝까지 전문가로 성장시키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합니다. 그런 기대를 하지 않을 때 여학생들이 지레 겁을 먹고 ‘나는 이 길로 가는 게 적합하지 않은가보다’ 하고 중도에 기를 꺾이고 탈락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을 주변에서 보고 있어요.”

-교수님의 연구실에선 어떤지요. 

“제 방(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이 논문도 많이 내지만 재생산도 굉장히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웃음). ‘결혼 해서 아이도 많이 낳으라’고 장려했고요. 실험실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박사후 과정까지 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결국은 지도교수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느냐에 따라서 학생들이 끝까지 전문가로 크느냐, 중도에 탈락하느냐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대부분 연구실에서 여학생에겐 이런 것을 기대 안 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어느 선배 교수님께서 제게 ‘당신은 이렇게 늦게까지 집에 안 가고 회의에 가고 그러면 남편 밥은 누가 해 주느냐’고 굉장히 걱정스럽게 물으시는 거예요. 저는 그 분이 제게 선의를 갖고 계신 것을 알기에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분이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런 경우 여성을 흔쾌히 동료로 받아들이거나 교수로 채용할까요? ‘일을 늦게까지 시킬 수 없을 것이다’,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은연 중에 가지고 계신 거죠. 이런 경우 제자들에 대해서도 성별에 상관없이 끝까지 전문가로 키워내겠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겠지요.”

-그런 문화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학문을 하는 여성들에게 눈에 보이는 롤모델이 더 많아져야 되는 게 우리의 숙제입니다. 후학을 지도하는데 남자든 여자든 균형잡힌 시각을 키우게 하려면 여성 교수가 더 필요해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정부 정책에 따라 서울대가 한꺼번에 30명 정도의 여성 교수를 임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제 뭔가 학교가 바뀔거다’라는 큰 기대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뿐이었고 그 이후에 여성 전임교원 수는 증가세는 거의 정체가 되어요. 자체적으로 ‘우리끼리 노력하자’고 아무리 해도 앞에서 끄는 힘이 없으면 문화는 쉽게 안 바뀌어요. 제도가 앞장서면 문화가 따라가는 게 지금으로선 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조직의 힘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데서 나오고 앞으로는 그것이 더 심화될 겁니다. 세상이 굉장히 빨리 변합니다. 소위 ‘4차 산업사회’이라고들 얘기하는 시대에는 얼마나 창의적이고 다른 이들과 소통을 잘 하느냐가 중요해지는 거죠.”

-교원과 직원의 임용 다양성을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이 필요할까요.

“그렇다고 봅니다. 최근 서울대 다양성위원회와 국공립대여교수회연합회가 낸 제안을 받아들여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이 교육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대학 교원 신규 채용 때 성별이 한 쪽에 쏠리지 않도록 구체적인 채용 비율을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학 내 성평등을 위한 임용계획 및 추진 실적을 평가하면 그 결과를 공표하고 의무적으로 행정적·재정적 지원에 반영하도록 하는 게 골자입니다. 여학생 비율과 여성 교원 비율 사이의 큰 간극을 좁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성보고서에서는 비정규직인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번 통계에서는 시간강사도 두 부류로 나눴습니다. 시간강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과 겸업으로 하는 사람 즉, 다른 직업이 있는 경우로요. 시간강사 외에 다른 직업이 없는 경우가 700명쯤 됩니다. 이 그룹에 대해서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해결책은 금방 나오지 않는 문제들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러나 ‘이 부분을 우리가 더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걸로도 큰 시작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이 다양성보고서를 매년 작성하는 의의겠지요. 이런 노력이 다른 학교나 기관들에도 많이 확산됐으면 하는 게 저의 큰 바람입니다.” ...

경향신문,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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