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대법원 다양화①] 20년간 45명 대법관 들여다 보니..변호사·학자 출신 극소수

2020. 3. 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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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다양화 요구 거셌지만 변호사·학자 2~3명 불과
'서울 법대, 50대 남성 판사' 여전히 강세..여성은 점차 증가
'연간 4만건' 업무 과다, 엘리트 판사 선호 현상 깨기 어려워
[그래픽=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문재연·좌영길 기자] 대법원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랫동안 지속됐지만, 최근 20년간 ‘서울대 법대 출신 50대 남성 법원장급 인사’ 공식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대법관 수가 점차 증가하고, 서열에 얽매이지 않는 방향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지만, 비 판사 출신 인사가 극소수여서 법원의 ‘순혈주의’는 확고했다.

18일 헤럴드경제가 2000년 이후 20년간 임명된 대법관 45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판사 출신이 압도적인 비율인 37명(82.2%)을 차지했다. 검사 출신은 3명(6%), 변호사 2명(4.4%), 교수 2명(4.4%)으로 집계됐다. 대학 기준으로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 33명으로, 73.3%를 차지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38명(84.5%), 여성이 7명(15.5%)이었다.

법원조직법상 대법관은 판사·검사·변호사 및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교수나 공공기관 종사자 등 여러 직군에 개방돼 있지만, 여전히 판사 승진 코스 정도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학자 출신이 처음 대법원에 입성한 것은 지난 2008년 양창수(68·사법연수원 6기) 대법관이다. 민법학계 실력파로 인정받는 양 전 대법관은 5년간 판사로 재직하다 서울대 법과대학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대법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20년간 강단에 섰다. 학자 출신 대법관은 2016년 임명된 김재형(55·18기) 대법관과 양 전 대법관 둘 뿐이다. 김 대법관 역시 3년간 판사로 재직하다 서울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변호사 출신도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조재연(64·12기) 대법관과 김선수(59·17기) 대법관이 둘 뿐이다. 박보영(59·16기) 전 대법관이 변호사 신분일 때 임명됐지만, 변호사 활동기간(8년)보다 판사 재직기간(17년)이 더 길다. 조 대법관은 덕수상고를 나와 한국은행을 다니다 성균관대 야간부 법학과를 거쳐 판사와 변호사를 지내 ‘서오남’ 도식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임기를 시작한 김 대법관은 판사 경력이 전무한 순수 재야 변호사 출신 첫 대법관이다.

첫 여성 대법관 나온 것은 2004년으로, 법원조직법이 공표된 지 55년 만이었다. 청탁금지법을 탄생시킨 김영란(64·11기)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주인공이다. 2006년 전수안(68·8기) 대법관과 2012년 박보영 대법관이 각각 임명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박정화(55·20기)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을 차례로 임명해 여성 대법관의 숫자는 7명으로 늘어났다. 여전히 적은 비중이지만, 연령이 내려갈 수록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올라가기 때문에 향후 성비 문제는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고질적인 서열 순 승진 구조가 깨지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사법연수원 기수마다 1~2명의 대법관이 나오던 관례는 2010년 중반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사법연수원 11기 대법관은 4명이나 있었지만, 15기와 16기, 19기 대법관은 한 명 뿐이다. 대신 박정화, 김상환 대법관 임명으로 20기 시대가 열렸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사법연수원 15기 김명수 대법원장이 파격 발탁된 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본안사건은 4만7979건으로 집계됐다. 사건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은 대법원 다양화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대법관들이 사회적으로 다양한 시각이 반영돼야 하는 중요사건에 집중하지 못하고 밀려오는 사건을 처리하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기록을 많이 읽고 빠른 결론을 내리는 ‘엘리트 판사’ 선호 현상은 상고심 사건 수를 줄이는 제도 개편이 이뤄지지 않으면 당분간 변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오랜 한 전직 법원장급 인사는 “대법관의 실력은 수많은 상고심 사건 중에서 어떤 걸 전원합의체로 가져가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느냐에 달려 있는데, 기본적으로 사건을 많이, 빨리 처리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대법관에 임명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인선에는 지역안배도 고려됐다. 20년간 대구·경북 출신 대법관은 6명, 호남 역시 6명으로 서울 5명보다 많았다. 이른바 ‘TK’ 대법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꾸준히 배출되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강원 출신은 조재연 대법관, 제주는 양창수 전 대법관이 유일하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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