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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iz] 다양성·평등에 돈 쏟아붓는 기업…그렇게 투자하는데 왜 안될까

한예경 기자
입력 : 
2022-02-10 0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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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as Interrupted / 조앤 C. 윌리엄스
사진설명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에서 조앤 C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 로스쿨 교수의 책을 집어 들었다면 주변 사람의 시선이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 윌리엄스 교수는 자타 공인 '페미니스트'니까. 사실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혐오를 내포하는 과격한 정치용어로 변질되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부터 그는 젠더 이슈를 연구해왔다. 특히 미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르는 법적 문제에 있어서는 윌리엄스 교수를 빼놓고 설명이 불가할 정도다. 하지만 그의 작가적 무게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다. 2017년엔 백인 노동자 계층을 뜻하는 'White Working Class(국내 미출간)'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읽다가 중간중간 수십 쪽을 접어놨다고 했을 정도로 인기였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현상'을 비롯한 미국 사회가 내포한 다양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큰 나침판이 되어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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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 교수가 지난해 연말 출간한 'Bias Interrupted'도 지금 미국 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서구권보다 인종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로운 한국 사회에서 이런 책이 번역·출간된다고 한들 잘 팔릴까 싶기는 하지만 한국 기업에도 반면교사가 될 만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특히 지금까지 윌리엄스 교수의 책이 법과 사회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면 이 책은 기업경영자들에게 직접 조언할 만한 내용을 담았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미국 대기업들은 연평균 80억달러가 넘는 돈을 다양성·평등·포용성(DEI·Diversity Equality Inclusion)에 퍼붓고 있는데, 왜 여전히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있나. 윌리엄스 교수는 요즘 미국 유수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다양성 문제에 대해서 매우 예민하고, 직원들 특히 밀레니얼세대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을 꼬집는다.

가령 2018년 필라델피아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흑인 고객 2명이 주문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직원이 흑인 고객을 신고해 체포당하게 만드는 사건을 겪는다. 이 사건 이후 스타벅스 브랜드가 상당한 타격을 받으면서 하루 동안 미국 전역의 8000개 점포를 일시적으로 닫아버리고 인종차별 예방교육을 실시했다. 미국 기업들이 이 정도로 인종문제에 예민한데도 불구하고 직장 내 다양성·포용성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 직장 내 양성평등 문제를 1970년대부터 해결해나가기 위해 애썼던 미국이지만 미국 기업 내 여성 최고관리자 수준은 유럽에 훨씬 못 미친다.

이렇게 돈을 쓰는데도 왜 해결이 안 될까. 기업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이렇게 돈을 썼으면 진작 해결됐을 텐데 왜 유독 다양성·평등·포용성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것일까. 윌리엄스 교수의 대답은 단순하다. 기업들이 헛돈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다양성·평등·포용성 문제도 일반적인 경영 문제로 바라보고 경영지표로 해결하면 되는데 많은 기업들이 측정 불가능한 그 가치만 추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가령 기업에서 매출이 떨어지면 월·분기·연간 등 각종 시간 스케줄에 따라 매출 변화를 살펴보고, 특정 수준까지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다양성 지표가 떨어지면, 가령 전체 직원 중에 성소수자나 유색인종 비율이 떨어지면,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분기별로 노력하는 회사가 있을까. '거의 없다'는 게 윌리엄스 교수의 답이다.

그렇다면 결국 해법은 여성·흑인들을 더 많이 고용하면 된다는 말인가? 그건 또 그렇지가 않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이 단순한 해법, 즉 '더 뽑으면 된다'로 해결을 보려고 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뽑은 인재들은 더 빨리 이직해버리고, 본질적 문제인 기업의 다양성·평등·포용성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윌리엄스 교수는 인종·성별·소득·연령 등이 골고루 섞인 미국 직장인 1만8000명에 대한 '직장경험조사(Workplace Experience Survey)' 연구를 통해서 다양성·평등·포용성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편견'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재증명 편견이다. 가령 여성이나 흑인들은 채용이 된 후에도 같은 자리에 있는 백인 남성 동료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 이들은 기회를 얻기도 전에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편견이 뒤따른다. 두 번째는 줄다리기 편견으로, 사내 정치 줄다리기가 백인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가령 백인 남성이 권위 있고 야심만만한 모습을 보일 때 흑인 남성이 같은 모습을 보이면 독단적이라고 오해를 받는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진흙탕 싸움의 편견. 한 집단 내에서 갈등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편견이다. 가령, 한자리를 놓고 두 여성이 동시에 경합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이 있다. 네 번째는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 가령 아시아인들은 수리능력이 좋지만 리더십은 부족하다는 편견 때문에 미국 직장 내에서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모성 편견이 있다. 자녀가 있는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부족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미국 직장 내에 상당하다.

요즘 많은 한국 기업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밀레니얼 개발자를 뽑기 위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지만 금세 다른 회사로 이직해 버리더라, 여성 직원들을 위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지만 정작 임원으로 뽑을 만한 여성은 부족하더라, 요즘 젊은 직원들은 회사를 위한 희생이란 없고 오히려 회사가 자기를 위해 희생하길 바란다 등. 대중소 기업 할 것 없이 경영진이라면 다들 비슷한 일을 하소연한다. 문제 해결법은 결국 회사와 사회 속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편견을 찾아내고, 그걸 뿌리 뽑는 게 우선이라는 게 윌리엄스 교수의 주장이다. 다양성·평등·포용성이란 단어는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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