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를 보지 말고 성소수자 차별을 보라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서울시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과다한 노출을 금지하고 청소년 유해 물품을 판매하거나 전시하면 안 된다는 제한을 두어 조건부로 장소 사용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렸다. 퀴어 문화 축제는 이렇게 ‘저속하여 다수에게 피해를 끼치며’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라는 틀 안에서 논의되곤 한다. 이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방송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재현은 품위가 없다거나,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제한되어 왔다. 2015년 <선암여고 탐정단>에 등장한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의 재현은 방송심의규정 중 ‘품위 유지’와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에 대한 조항’ 등을 근거로 법정 제재를 받았다. <보헤미안 랩소디>에 나타난 주인공의 성적 지향과 관련된 묘사를 방송국이 자체 편집한 것은 작년의 일이다. 최근 OTT 채널을 중심으로 성소수자가 주역인 예능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우려된다면서 해당 프로그램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메리 퀴어>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어떤 부분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해당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다면, 그 프로그램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다. 법제도적 인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법적 차별이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드는 미세차별 양상들이 출연자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MC로 등장하는 연예인 홍석천씨의 회고와 경험담 속에 드러난다. 이러한 차별이 문제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되풀이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프로그램이 문제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들을 통해 다시 한번 사회적 차별의 공고함을 만나게 되는 것이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방송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청소년들이 방송을 통해 세상을 배워나가기 때문이다. 다양한 존재를 존중하기 위해 타자의 삶을 경청하고 어떤 삶이 차별이나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직접 경험을 통해서뿐 아니라 미디어 재현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래서 방송 및 여타 미디어가 사회적 차별을 재생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재현의 가시성 역시 사회적 차별 문제를 해소하는 데 핵심적이다.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담론은 청소년 성소수자는 없는데 재현 때문에 성소수자가 된다는 식이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를 비가시화하는 주장인 셈인데, 이처럼 비가시화하는 차별 담론에 맞서 미디어에 소수자가 등장하는 것은 사회적 존재를 확인해주는 일이다.

물론 청소년에게 금지되어야 할 문제적 재현이나 정보가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도박 중독 문제는 불법촬영물을 보기 위해 접속한 사이트에서 연결되는 경우이다. 하지만 방송에 성소수자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이러한 금지 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금지되어야 할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재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방송 심의 규정에는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내용이 명문화가 되어 있지 않다. 방송심의규정 제29조는 “방송은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인종 간, 종교 간 차별·편견·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여,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명시적 언급을 피하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적용 규정으로 제21조 2항, “방송은 심신장애인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특히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가 사용되는데 이는 다소 시혜적 성격으로 차별의 금지를 명시한 것이 아니다.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재현이 차별로 금지되지 않는 현실이다. 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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