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혐오를 넘어

(5)연령·인종·성별·성적 취향…다양성 공존하는 사회일수록 부·창의성 증가

이영경·김찬호·유설희 기자

‘게이 지수(gay index)’라는 게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개방성과 다양성을 측정하기 위해 게이(동성애자)를 지표로 삼았다. 게이들의 밀집도를 기준으로 지역의 순위를 매긴 결과 게이가 많이 거주하는 도시일수록 첨단산업이 발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DC, 오스틴, 애틀랜타, 샌디에이고, 시애틀 등이 그곳이다. 1990년 게이 지수 상위 10대 지역 가운데 6곳이 첨단산업 밀집 상위 10대 지역과 일치했으며, 2000년 게이 지수 상위 10대 지역 가운데 5곳이 첨단산업 밀집 10대 지역에 속했다. 플로리다는 “동성애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의 마지막 전선이고 게이 공동체를 받아들이는 지역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환영한다”며 “첨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고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갖춘 지역에 이끌린다”고 주장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중요한 것은 게이가 아니라 게이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이나 풍토”라고 말했다.

혐오와 차별의 반대편에는 다양성의 공존과 평등이 있다. 우리 사회가 혐오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는 혐오가 당사자에게만 해롭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일수록 부와 창의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혐오에 들어가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창의적 에너지로 바꾼다면 우리 사회 전체의 부와 역량이 증가할 수 있다. 윤수종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수록 사회적 부가 커진다”며 “농업에서도 품종 다양성이 줄어들면 위험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다양성이 공존해야 풍족해진다”고 말했다.

■ 다양성이 사회적 부를 증가시킨다

“다양성이 능력보다 중요하다(Diversity trumps ability).” 경제학자 스콧 페이지의 말이다. 연령·인종·성별·지역·성적 취향 등의 다양성은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이 된다. 여성 임원이 많거나 직원의 다양성 지수가 높을수록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연구들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이민 유입이 1% 증가할 경우 해당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장기적으로 2%가량 높아진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대한민국 워킹맘 실태조사 보고서’(2010)에는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1% 증가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1% 증가하는 경제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호주는 정책적으로 다양성을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를 ‘생산적 다양성’ 프로그램으로 부른다. 기업이 다양한 민족 출신자들을 고용해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해외 시장을 확대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양성이 부를 증가시킨다’는 명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곳은 초국적 기업이다. 윤수종 교수는 “초국적 기업들은 문화적, 인종적, 성별 차이를 다양한 사람을 고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들을 위한 시장을 만들고 소비자로 포용해 더 많은 부를 쌓는다”고 말한다.

영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 샬럿 틸버리의 홈페이지를 둘러보자. 다양한 피부톤의 모델이 제품을 바른 사진을 볼 수 있다. 소비자는 아주 밝은 피부색과 모발을 가진 모델부터 아주 어두운 피부색의 모델까지 총 10명의 모델이 립스틱을 바른 사진을 보고 제품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샬럿 틸버리는 모든 인종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다양한 인종을 자신의 고객으로 끌어들이면서 전 세계 70개국 이상 시장에 진출했고, 2016년에는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을 일컫는 ‘핑크 머니’도 부상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관 위텍에 따르면 ‘핑크 머니’는 2014년 기준 8840달러(약 1005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색깔을 모티프로 한 상품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으며, 귀금속 브랜드인 티파니는 동성 커플을 광고에 등장시켰다.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한국에선 해외 기업들이 앞장서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서울 퀴어문화축제에는 러쉬코리아와 구글코리아가 참여했다. 러쉬코리아는 퀴어문화축제 기간에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핑크 이력서’를 받아 이들을 채용했다. 러쉬코리아 측은 “능력 좋고 개성이 강한 다양한 인재들이 함께하면서 창의적이고 수평적 문화가 만들어지고 회사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 아직은 갈 길이 먼 한국 사회 다양성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섞여 사는 캐나다의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2015년 ‘다양성 내각’을 출범시켰다. 남녀 동수 내각을 구성하고, 원주민·난민·장애인·이슬람 교도 출신 장관을 임명했다. 배유경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책임전문위원은 “정부의 정책의제가 다양해지는 계기가 되며, 다양한 관점으로 역동적 조직을 만들 수 있어 급변하는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도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이주민의 다양성을 포용하기보다는 획일적으로 통합하려 해왔다. ‘단일 민족’으로의 일체감을 강조해온 역사적·문화적 전통은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동질성을 강조해왔다. 이주노동, 국제결혼 등을 통한 이주민 비율이 높아졌지만, 이주민의 다양성을 포용하기보다는 한국어 교육, 한국 역사 교육을 통해 동화시키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는 “이주민만 일방적으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변화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 기존 구성원도 이주민의 다양성을 받아들여 함께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다문화사회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양하고 포용적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다문화 교육은 이주민과 이주민 자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다양성은 단순히 여러 나라의 문화가 혼재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구성원을 인정하고 이주민도 한국 사회 안 다양성의 하나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덧붙였다.

내 안의 소수자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사회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은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소수자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멈추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위한 이로운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혐오 대응 노하우 잘 정리”“교과서에 실리면 좋겠다” 독자·전문가 호평 잇따라


경향신문 창간 71주년 기획 ‘혐오를 넘어’는 우리 사회의 혐오 이슈에 대해 당사자 및 시민과 함께 본격적으로 고민한 최초의 기획기사로서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시기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를 기사화해서 다행이다. 혐오를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는 노력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시대”(네이버 사용자 ‘go****’) “이 세상엔 완벽한 강자는 없는 법이다. 교과서 내용으로도 실리면 좋겠다”(다음 독자 ‘ez**’)를 비롯한 응원이 포털 댓글로 달렸다.

혐오에 대응하는 당사자와 제3자의 사례를 소개한 ‘힘이 세지는 혐오대응법’(http://nohate.khan.co.kr/con01_list.html)은 교육용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트위터 이용자 ‘복**’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각자 그 목소리를 지켜온 혐오 대응 노하우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하나씩 선택해 읽고 자기 생각을 더해 토론하는 수업에 잘 활용했다”고 말했다. ‘가을**’는 “혐오가 소수자성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전문가 한둘의 인터뷰가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배치한 구성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혐오대응법의 구체적 제시는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회 구성원들이 혐오에 함께 대항해가는 연대체를 만드는 것이 혐오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이병헌 활동가는 “보도 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을 일컫는 ‘앨라이’ 신청자가 늘었다”며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가야 하는 시기에 필요한 기획”이라고 말했다.


<시리즈 끝>

■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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