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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다양성위원회 초대위원장,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인터뷰

18-08-24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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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8-08-24 16:25 조회6,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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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시: 2018. 8. 24.(금)
  • 장소: 한국연구재단 서울청사
  • 참석자: 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홍기선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 위원장, 배유경 서울대학교 다양성위원회 책임전문위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정혜 교수가 지난 7월 한국연구재단 제6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한국연구재단은 2009년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하여 정부 R&D 예산의 1/4인 약 5조원을 관리 집행하는 한국 최대 연구지원기관이다. 
노정혜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에 입학하여 1979년 자연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분자미생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6년 서울대 자연대학의 실험 부문 최초이자 20대 여교수의 임용으로 화제가 되었다. 생명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임과 동시에 서울대학교 연구처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기초연구연합 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학과 사회발전에 앞장서 왔다. 또한 대학 내 성평등 발전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여교수회장과 다양성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이사직도 맡고 있다. 


Q1.

이사장님께서는 교수로서, 과학자로서, 여성리더로서, 이제는 국가 연구경쟁력 제고를 이끄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고 계십니다. 이사장님을 여기까지 이끈 학창시절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1.

현재 이 자리에 오기까지를 떠올려 보면 계획적이고 용의주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해요. 어려서는 재미있는 일을 하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어요. 사회에 대해 심각한 고민도 별로 없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진로를 결정할 때에는 내 스스로 논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교과목에 재미를 느끼고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과를 선택하면 의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지만 내 스스로 의사 적성이 아닌 것을 알았어요. 왜냐하면 동생이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어도 닦아주고 돌봐주지 못하고 고모에게 맡기고 도망갈 정도로 피를 무서워 했거든요. 또 사람이 아플 때 다독거려주는 따뜻한 마음이 부족하다고도 생각했어요. 워낙 중학교 때부터 생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연대의 미생물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교수님들께 배우는 것 이외에 선배, 동기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 시절에는 유신체제 반대 시위로 휴교를 자주 해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서울대학교는 대학원 체제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았던 시절이라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Q2.

교내에서 자연대 학생부학장, 연구처장, BK단장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연구와 보직이 양립하기 어렵진 않으셨나요?  

A2.

네, 부교수 승진 후 자연대 학장님께서 학생부학장을 하라고 하셨어요. 실험실에서 할 일도 많아 부담이 컸지만, 학교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보직에 임했습니다. 그 후 실험실로 돌아가 연구를 지속하던 중에 2004년 정운찬 총장님이 연구처장을 부탁하셨고, 고민이 많이 되었지만 연구와 보직 두 가지를 최대한 병행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 제가 연구처장으로서 하고자 했던 일들은 도서관을 확충하고, 연구비 관리를 본부에서 최대한 관리하여 연구자들을 돕는 등 소박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논문조작 사건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연구처장으로서 연구윤리에 관한 것을 조사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연구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를 수행하고 언론에 대국민보고까지 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조사위원들이 분명한 결과를 얻으셔서 사건이 올바르게 처리되었습니다. 이 일은 제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우리 학계 및 사회에 연구윤리, 연구진실성에 대한 주의가 환기되고, 서울대학교를 위시하여 전국적으로 연구진실성위원회, 연구윤리위원회 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2년간 처장직을 끝내고 다시 학과로 돌아가 연구실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뒤 학과에도 봉사를 하고 싶어 학부장, BK 단장 등도 맡게 되었습니다.


Q3.

여교수회 회장과 다양성위원회 초대위원장도 맡으시며, 양성평등과 다양성 증진을 위해 노력해 오셨는데요.  

A3.

여교수회 일에 계속 관여하다가 2015년 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속적으로 여교수의 문제에 대해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그 일을 해야 하는 직무가 주어진 것이죠. 회장을 하면서 여교수 현황, 리더로 성장하지 못하는 분위기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타계할 수 있을지 여교수회 교수님들과 고민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여교수회에서는 지속적으로 서울대학교의 양성평등에 관해 기획연구를 해왔는데, 현재 국민권익위원회 박은정 위원장님이 기획한 연구에서 학교 내에 실행력있는 전담기구 설치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때 홍기선 선생님이 팀장이셨죠. 당시 성낙인 총장께 성평등 뿐만 아니라 마땅히 받아야 할 주목을 받지 못하는 소수집단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고, 여교수회가 중심이 되어 기구를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했고, 총장님께서 동의를 해주셔서 2016년 다양성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위원장을 2년 반동안 맡다가, 7월부터 한국연구재단으로 오게 되었네요. 다양성위원회는 대학 내에서도 모든 구성원들의 지지를 얻었고, 사회에서도 관심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잘 자리잡아 서울대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좋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Q4.

이사장님은 특별히 계획을 세우거나 노력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기회가 열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발전이 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고, 이사장님께서 많은 노력을 해오셨기 때문일 텐데요, 후배들을 위해 좀 말씀해 주십시오.  

A4.

제가 발전해왔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발전하게 된 것은 제 인생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가르침을 주셨던 많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대 부학장을 할 때에도 학장님이 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또 주변에서 평생 연구에 전념하시는 선배 교수님들을 뵈며 “아, 내가 연구자로서 대충 살면 안 되겠다. 보직을 할 때에도 연구를 소홀히 하면 안 되겠다. 어려워도 꼭 병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다졌습니다. 연구처장을 할 때에도 정운찬 총장님을 뵈면서 큰 기관의 리더는 저렇게 유연하고 많은 것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30년간 제 종교적 신앙을 실천하는 것과 관련된 NGO에 설립시부터 지금까지 운영위원으로 있는데, 그 모임에서 배운 것도 매우 많습니다. 그 모임에서 제 직업과 무관한 분들을 많이 만나면서 학교 실험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진실한 관계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여교수회나 다양성위원회 분들과의 sisterhood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제 인생에서 그때 그때 제가 속하게 되는 그룹들에서 가치있는 것들을 많이 배웠으며, 이런 것들이 저를 계속 키워줬다고 생각합니다.


Q5.

국내 대학 최초로 설립된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셨는데, 어떤 각오로 시작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포부를 가지고 계십니까? 

A5.

사실 설립 초기를 떠올려보면 이 기관의 역할에 대한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출범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관련되었던 분들 모두가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함께 만들어 갔다고 생각합니다. 2년 반 동안 위원장을 하면서 다양성위원회가 저를 많이 키우기도 하였습니다. 일반 행정 부서는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많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계획을 세울 여유를 찾기 힘듭니다. 다양성위원회는 부서를 초월하여 학교 전체 차원에서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3년째 되는 이 시점에서 더욱 많은 구성원들이 다양성 가치의 중요성을 인정해 주시고 함께 노력해 주셔서 감사하고, 우리가 함께 하고자 하는 일들이 더욱 분명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은 학교든 기업이든 다양성기구가 보편화되어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좋은 기구가 왜 좀 더 빠르게 세워지고 확산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대 다양성위원회가 많은 일을 하고 그런 것들을 잘 드러내 보인다면, 형태나 명칭은 좀 다를 수 있을지라도, 전국적으로 확산되리라 생각합니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기관들이 늘어나고 있구요. 우리가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Q6.

서울대에는 교육과 연구의 발전, 구성원의 화합 등 현안이 산적해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대의 발전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또 그 안에서 다양성위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A6.

저는 서울대 구성원들이 대학의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합의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학교가 추구하는 방향이 좋은 인재를 길러내자, 탁월한 연구를 하자,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하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비전을 함께 바라보고 마음을 모은다면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어떻게 하면 될지” 방법을 잘 연구해야죠. 또한 우리가 전체적인 목표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실제 구체적으로 내가 속한—학과, 단과대학 등—소집단을 생각하면 변화를 두려워하고 경직되고 장벽을 세워버리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학교의 리더가 되시는 분들은 구성원들이 각자 속한 소집단의 경계를 넘어서는, 그래서 동일한 방향으로 함께 힘을 모으도록 격려하는 일을 열심히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학장회의 같은 경우, 각 단과대학의 숙원사업을 해결하거나 단과대학의 입장을 주장하는 회의체가 아니라, 학교가 전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을 함께 논의하는 회의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들이 좋은 상황에 있는 강한 구성원들 뿐 아니라 어려운 상황의 구성원이나 소집단들을 모두 품어주는 포용성이 필요한데요, 그런 점에서 다양성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다양성이 학교를 통합하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7.

다양성위원회의 하반기 기획연구과제가 서울대의 비전임 박사의 문제입니다. 한국연구재단과도 관련되는 문제인데요, 연구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7.

비전임 박사들이 연구교수, 포닥, 박사후 연구원, 선임연구원 등 여러 가지 직위가 있습니다. 학교 내에서도 여러 직명으로 불리는데요, 이 분들이 연구교수나 선임연구원급 이상의 직위에 있으면 국가연구비를 신청해서 각자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이런 젊은 연구자들을 전임이건 비전임이건 상관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안 좋더라도 열심히 이런 연구비들을 신청하여 자기 연구분야를 계속 개척해 나가는 노력을 경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연구교수나 포닥 분들이 PI 아래에서 PI가 하는 연구의 일부를 수행하지만, 연구를 수행하는 자세는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동적인 자세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PI의 연구주제를 함께 하지만 내 독창적인 방식으로 주도적으로 하겠다, 그리고 내가 나중에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면 이러이러한 연구를 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Q8.

그런데 사실 그런 변화는 위에서 주도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A8.

물론 그렇지만, 꼭 그렇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PI들도 처음에는 후학들이 내 의견을 따라주면 좋지만,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박사들이 연구의 발전을 위해 좋기 때문에 더 기대를 갖게 됩니다. 그러니 젊은 박사님들이 지나치게 조심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요즘은 대체로 오히려 나이든 분들이 젊은 분들을 어려워 하쟎아요? (웃음)


Q9.

서울대를 넘어 우리 사회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A9.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른 시간 내에 급속도로 양적 팽창을 했기 때문에 외형은 굉장히 큰 사람이 되었는데 내적으로 부실한 요소들이 모든 분야에서 마구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이런 부실한 요소들을 없애고 새로운 발전단계로 들어가야 하는 변곡점에 와있는데요,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한계를 분명히 느끼면서도 선뜻 부실한 요소들을 잘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는 구성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죠.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려도 그런 부실한 요소들을 솔직하게 다 드러내고 충실하게 바꿔나가는 작업들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노력하는 것이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한국연구재단의 경우도 연구자들이 정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충실하게 연구해 가는 노력을 독려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연구자들도 본인들의 연구가 부실한 학술활동이 안 되도록 노력해 주셔야 합니다. 한국연구재단과 개별연구자들이 함께 성찰하고 노력해서 우리의 연구활동이 충실하고 창의적인 활동이 되도록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노력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장님께서 말씀해 주신대로 우리 사회가 부실한 요소들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함께 충실하게 바꿔나가 새로운 차원의 도약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앞장서서 그런 변화를 이끌어 주시고, 서울대학교와 우리 사회의 다양성 증진에도 큰 역할을 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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